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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배경

1875년 대원군 봉환 만인소의 역사적 배경
1873년 동부승지인 최익현(崔益鉉)의 상소를 계기로 친정을 결심한 고종은 이듬해부터 구체적인 친정 체제를 구축해 나갔다. 이를 위하여 무위소를 신설하여 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의 군사를 소속시키고, 대원군 때 훼철된 만동묘(萬東廟)를 다시 세우며, 병인양요 후에 설치된 강화 진무영을 폐지하였다. 또한 이최응(李最應)과 김병국(金炳國)을 각각 좌의정과 우의정으로 임명하였다. 최익현의 상소 이후 물러나 있던 대원군은 강화 진무영이 폐지되자, 불가함을 극력 주장하다가 양주 직곡으로 은거해 버렸다. 이로써 전국의 여론이 들끓었는데, 이에 따라 영남에서도 퇴계 이황과 서애 류성룡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대원군의 봉환을 요청하는 상소 운동이 추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