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성립과정
1855년 사도세자 추존 만인소의 역사적 성립과정
- 숙종 20년(1694), 갑술환국으로 정계에서 축출당한 남인
- 영조 4년(1728), 무신란(戊申亂)으로 반역당으로 지목된 남인
- 영조 11년(1735), 사도세자, 영조와 영빈 이씨 사이에서 출생
- 영조 25년(1749), 영조 15세 사도세자의 대리청정 시작, 당론의 처리를 두고 갈등
- 영조 38년(1762), 나경언 사도세자에 관해 10가지 죄목을 올리고, 결국 사도를 뒤주에 가둠
- 정조 원년(1777), 안동유생 이현도 부자가 사도세자의 죽음의 진상을 요구했다가 처형당함
- 정조 16년(1792), 사도세자 서거 30 주기를 겨냥해 사도세자의 신원에 대한 10,057명이 연명한 상소 작성
- 정조 16년(1792) 윤 4월 27일, 상소 승정원에 봉입
- 철종 6년(1855) 5월, 사도세자의 신원과 임오의리에 대한 만인소 작성